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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나이 근황 남편 이혼 재혼 자녀 딸 이승기카테고리 없음 2025. 6. 7. 21:04
전설의 비다로 불리는 가수 이선희는 키 158cm로 작은 거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요.
프로필
출생: 1964년 12월 14일
나이: 60세
고향: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학력
신광여자고등학교 졸업
인천전문대학 환경관리학과 학사 졸업
데뷔
가수 이선희는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았는데요. 1980년대~1990년대 실력있는 가창력으로 자신만의 팬덤을 만들어 낸 가수이기도 했죠. 지금도 유명한 J에게로는 1984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불러 아이돌급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선희 헤어 스타일과 크고 둥근 안경테 따라하는 유해이 일기도 했었어요. 당대 히트곡으로 아!옛날이여, 알고 싶어요, 나항상 그대를 등 노래는 지금까지도 인기가수나 젊은 세대 가수들이 리메이크 해서 부르는 전설의 곡이기도 합니다.
느닷없이 정치인으로
가수 이선희가 정치인으로 활동했었다니 라며 의아해 하는 분들 상당한데요. 대중들에게는 가수로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걸로 기억되기 때문이죠. 이선희는 가요계 정상 자리를 지키다 1991년~1995년까지 서울시의회 의원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이선희 소속사는 상의도 없이 시의원 후보에 등록을 마쳤었고, 갑자기 시의원직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 되버려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1995년 12월 6일부터~1996년 2월 17일까지 새정치국민의회의 문화예술행정특보위원직에 보임되어 잠깐 활동한 적도 있습니다.
결혼 사생활
1992년 작곡가, 기타리스트,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던 윤희중씨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선희의 매니저역도 했었죠. 이듬해에 딸 윤양원양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결혼생활에 문제가 없었죠.
이혼
1998년 IMF 경제 위기 직격탄을 맞은 한국에서 사업 중이었던 이선희 남편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사업이 어려워져 집안 재정 상태도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이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소속사 측은 이혼사유로 전남편이 장기간 해외 체류로 오랜 기간 별거해왔고 성격 차이도 이혼 이유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그렇게 결혼 생활 6년 만에 이혼하게 된 것이죠.
이혼 후 이선희 전남편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었는데요. 생활고에 시달리다 여관에서 자살을 했다고 보도되었어요. 이때 이선희도 심리적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졌었어요. 그 이후 그녀는 13살 딸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잠정 은퇴를 하게 된 것이었죠.
재혼 소식
2006년 9살 연상 남편과 재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가족과 가까운 친지만 모시고 비밀 결혼식을 올린 후 팬카페에 재혼 소식을 전해 대중들도 재혼 소식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남편은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으로 인해 사생활에 노출되는 것에 부담감이 있었다고. 결혼 사실을 알려지 않은 것도 재혼한 남편을 보호해 주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요계 정점을 찍은 스타인데다 재혼이었기때문에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을 것은 당연했었죠. 조용히 지나간 그녀의 선택을 팬들도 존중해 주었습니다.
자녀
사생활을 잘 공개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데요. 하지만 과거 SBS 미운우리새끼에 출연했을 때 하나뿐인 딸에 대해 언급해 화제가 되었어요. 이선희 딸은 아이비리그 명문대를 졸업한 인재, 1993년생.
이선희 이승기 ,무슨 인연
지금은 불호가 갈리지만 한때는 국민 엄친아로 불렸던 이승기는 가수로 먼저 데뷔했었는데요. 이승기의 가수로서 재능과 끼를 발견 한 주인공은 바로 이선희였어요. 그녀가 가수 활동을 잠시 휴식하면서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었을 때 고등학생이었던 이승기에게 가수 제안을 했다고 해요.
이에 이승기는 사기꾼으로 생각해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었다고 해요. 하지만 이승기 어머니가 이선희를 알라보고 깜짝 놀랐는데, 같은 세대였던 이승기 부무님은 이선희의 오랜 팬이었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단번에 가수 연습생이 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위기
한때를 풍미했던 이선희라도 가수로써 위기는 있었는데요. 1990년대 접어 들면서 이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고 상업적으로 성적표로 따지면 가장 저조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1992년 빠르게 변하는 가요계에 발맞춰 8집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한 음반을 내놓으며 위기를 기회로 바꿔 버렸습니다. 8집 조각배는 지금도 이선희 앨범 중 수작중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